‘네로의 침묵’에서 ‘월레스의 분노’까지
1825년 워릭 사자 대 불도그 두 차례 격투가 남긴 것
1. 첫째 날: 네로의 패배 ― 혹은 인간의 패배
1825년 7월 26일, 영국 워릭(Warwick) 시장 마을은 한낱 장터가 아닌 잔혹한 ‘흥행장’이 되었습니다. 이동 동물원 주인 조지 웜웰(George Wombwell)이 주최한 사자 대 불도그 격투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에 갇혀 태어나 **‘네로(Nero)’**라 불린 아름답고 위엄 있는 사자 한 마리와, 수차례 싸움에 투입돼 단련된 불도그 여섯 마리가 맞붙는 광경을 보기 위해 약 500명의 군중이 모였습니다.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사자의 압도적 힘을 기대했던 사람들과 달리, 피 흘리며 쓰러진 쪽은 결국 사자였고, 불도그들이 승리했습니다.
투견용 불도그 3마리가 차례로 들어와도 네로는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발바닥으로 개들을 밀어낼 뿐, 끝내 물지 않았습니다. 결국 세 번째 라운드에서 개들이 등에 올라타자 주최자 조지 웜웰은 ‘사자의 패배’를 선언하고 경기를 중단했습니다. Futility Closet
네로의 ‘침묵’은 단순한 격투 패배가 아니라 **‘인간의 야만성을 비추는 거울’**이었습니다. 현장에서 퀘이커교도 사무엘 호어는 “그 고귀한 짐승이 피범벅이 되는 모습을 보고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라며 싸움을 말렸지만, 군중의 환호는 더 컸습니다. 동물의 고통보다 오락을 선택한 사람들의 모습은 곧바로 신문·잡지의 거센 비난을 불러왔습니다.
고통받은 주인공들 – 네로와 불도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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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의 구경거리가 되도록 길러진 사자입니다. 야성(野性)을 펼칠 대륙 대신 좁은 우리를 전전하다, 낯선 원형 경기장에서 여섯 마리 개에게 둘러싸였습니다. 당일 그는 끊임없이 몰아치는 공격에 맞섰지만, 인간의 박수와 환호 속에 점차 지쳐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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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그들: ‘전투용’으로 길러진 이 개들 역시 피해자입니다. 인간의 손에 의해 싸움과 상처를 ‘직업’으로 부여받았고, 이 날도 사자를 물어뜯는 동안 수차례 찢기고 피를 흘렸습니다.
네로와 불도그 모두 생명을 존중받아야 할 동물이며, 단지 사람들의 오락을 위해 이용되었습니다. 개와 사자가 ‘승패’를 가리는 동안, 그 자리엔 공정한 스포츠도, 교육적 가치도 없었습니다. 남은 것은 고통과 공포뿐이었습니다.
2. 일주일 뒤: 월레스의 ‘승리’가 던진 역설
웜웰은 체면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영국 최초의 사자 사육’ 기록을 가진 **월레스(Wallace)**를 링에 올리며 “이번엔 사자가 개들을 거뜬히 이길 것”이라고 공언했습니다.
예상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월레스는 불도그 한 마리를 입에 문 채 링을 돌고, 또 한 마리를 단숨에 눌러 죽였습니다. 네 마리가 그대로 쓰러졌고 남은 두 마리도 싸움을 포기했습니다. merseamuseum.org.uk
사자가 ‘승리’했지만, 대중의 눈에 비친 것은 오히려 피투성이로 죽어간 개들이었습니다. 네로 경기 때보다 더 거센 여론이 들불처럼 번졌고, 웜웰은 《타임스》에 “사자를 죽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며, 다시는 이런 장면을 연출하지 않겠다”는 공개편지를 써야 했습니다. merseamuseum.org.uk
3. 두 경기가 남긴 사회적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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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 여론 폭발
- 1824년 출범한 **동물학대방지협회(SPCA)**가 막 첫걸음을 뗀 시기였습니다. 사자 대 불도그 격투는 “잔혹 행위 금지”라는 협회 활동에 불을 지피며, 소·곰 베팅이 금지 법안 논의에도 힘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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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국가 이미지 논쟁
- 언론은 “근대 영국의 품격에 맞지 않는 야만성”이라 지적했습니다. 상류층 독자들도 ‘로마식 검투’를 연상시키는 피의 오락을 공공연히 비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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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사의 아이러니
- 웜웰은 “사자들의 몸엔 긁힌 상처만 있다”며 책임을 피했지만, 동시에 *“네로와 월레스, 워릭에서 개를 이긴 사자”*라는 문구로 자신의 이동 동물원을 광고했습니다. 격투의 잔혹함이 곧 마케팅 자원이 된 셈입니다. merseamuseum.org.uk
4. 동물을 사랑하는 시선으로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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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도, 개도 모두 피해자입니다. 네로는 싸움을 거부했지만 물어뜯기는 고통을 겪었고, 월레스는 ‘승리’의 대가로 채찍과 함성을 견뎌야 했습니다. 불도그들은 인간이 만든 ‘싸움 머신’이 되어 살과 뼈가 으스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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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 500명의 선택이 역사적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환호와 이어진 언론의 분노가 법·제도 개선을 앞당겼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불법 투견·투계, 야생동물 전시, 서커스 등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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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이라는 단어를 경계해야 합니다. 17세기 왕실 오락이었던 ‘사자 몰이’가 한 세기 뒤엔 범죄적 학대로 규정되었듯, 지금 당연시되는 관행도 미래 세대에겐 잔혹한 역사로 기록될 수 있습니다.
5. 맺으며 ― 연민과 책임의 연대기
네로의 침묵이 보여준 품격, 월레스의 분노가 드러낸 생존 본능. 두 사자는 인간의 욕망이 만든 링 위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19세기 영국 사회에 **“동물도 고통을 느끼는 존재”**임을 각인시켰습니다.
오늘 우리가 동물을 사랑한다는 것은, 200년 전 그 피비린내 나는 격투를 반복하지 않도록 _선택_하고 _행동_하는 일입니다. 법을 지지하고, 잔혹한 오락을 거부하며, 생명 앞에서 연민과 책임을 다지는 것—그것이 네로와 월레스가 남긴 가장 값진 유산입니다.